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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바바는 왜 악당이 아닐까? 명장면으로 풀어보는 유바바의 입체적 매력과 해석 

유바바는 왜 악당이 아닐까? 명장면으로 풀어보는 유바바의 입체적 매력과 해석 

스튜디오 지브리의 명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캐릭터는 단연 온천장 ‘아부라야’의 주인인 마녀 ‘유바바’일 것입니다. 

거대한 머리와 화려한 장신구, 날카로운 손톱으로 치히로를 위협하던 그녀의 첫인상은 분명 공포스러운 ‘악당(빌런)’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세계관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순수한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늘은 영화 속 유바바 명장면 4가지를 심층 분석하여 그녀의 다각적인 매력을 해석하고, 작품의 핵심 앵커인 ‘치히로가 유바바를 할머니라 부른 이유’를 통해 감독이 숨겨놓은 진정한 메시지를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해석짤도 궁금하시다면 바로 확인해보세요.

유바바의 ‘입체적 매력’을 보여주는 명장면 TOP 4

유바바의 다면적인 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명장면 네가지를 해석해보겠습니다.

① 자본주의의 비정함과 주체성 상실: “네 이름은 이제부터 센이다”

유바바가 치히로와 고용 계약을 맺은 후, 허공으로 글자를 날려 보내며 치히로(千尋)라는 이름에서 ‘치히로’를 빼앗고 ‘센(千)’이라는 이름만 남기는 장면은 영화 역사상 손에 꼽히는 유바바 명장면입니다. 

계약서라는 근대적 장치와 마법이라는 판타지 요소가 결합하여 엄청난 시각적 긴장감을 선사합니다.

이 장면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가 겪는 ‘주체성 상실’과 ‘부품화’를 완벽하게 은유합니다. 

본명에 담긴 고유한 역사와 개성을 지워버리고, 오직 효율성과 관리를 위해 숫자나 직급(센=천)으로 노동자를 환원시키는 고용주의 비정함을 상실의 공포로 연출해 낸 명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② 철저한 프로페셔널 리더십: 오물신 정화 사건

모든 직원과 신들이 악취와 오물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오물신’이 찾아왔을 때, 유바바는 코를 쥐어짜면서도 결코 도망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천장의 주인으로서 정면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센에게 침착하게 대응을 지시하며 위기 상황을 진두지휘합니다.

이 장면에서 유바바는 단순한 탐욕가가 아닌 ‘유능한 경영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아무리 혐오스러운 손님일지라도 돈을 지불하는 ‘고객’이라면 차별하지 않고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페셔널함이 돋보습니다. 

이후 오물신의 정체가 유명한 강의 신으로 밝혀지고 온천장이 사방의 금으로 가득 차자, 센을 품에 안고 호쾌하게 웃으며 칭찬하는 모습은 공과 사가 확실한 훌륭한 리더의 표본입니다.

③ 지독한 모성애와 과잉보호: 거대 아기 ‘보우’ 앞에서의 무력함

온천장 전체를 쥐락펴락하며 호령하던 절대 권력자 유바바가 유일하게 통제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그녀의 거대한 아기 ‘보우’입니다. 

보우가 조금만 칭얼거리거나 울어재끼면 유바바는 마법조차 쓰지 못한 채 식은땀을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이 명장면은 밖에서는 냉혹한 지배자이지만 집에서는 자식에게 눈이 멀어 올바른 훈육을 하지 못하는 ‘모성애의 맹점’을 풍자합니다. 

온갖 화려한 보물과 푹신한 베개 사이에 아기를 가두어 키우는 유바바의 과잉보호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아이를 나약하게 키우는 현대 가족 제도의 문제점과 부모의 부조리함을 날카롭게 꼬집는 장치입니다.

④ 순수한 인간성이 권력을 압도하다: 계약 체결과 첫 대면

방에 무단 침입한 치히로를 향해 불을 내뿜고 마법으로 목을 죄어오며 기선제압을 시도하는 유바바. 

그러나 치히로는 그 무시무시한 압박 속에서도 울음을 터뜨리는 대신, 당당하게 눈을 맞추며 “여기서 일하게 해주세요!”라고 소리칩니다. 

거대하고 압도적인 마녀의 권력과 작고 유약한 아이의 의지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이 장면은 작품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명장면입니다.

유바바는 온천장의 규칙(일하고자 하는 자는 거두어 준다)에 묶여 있기 때문에, 치히로의 끈질긴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계약서를 내밀게 됩니다. 

권력자가 자신이 만든 시스템의 규칙에 역으로 구속당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동시에, 탐욕과 마법으로 무장한 어른의 세계를 깨부수는 것은 결국 계산 없는 아이의 용기라는 점을 시사합니다.

깊이 읽기: 치히로가 그 무서운 마녀를 ‘할머니’라 부른 진짜 이유

유바바를 처음 마주한 세계의 주민들과 인간들은 대개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납작 엎드려 자비를 구합니다. 

하지만 치히로는 유바바의 엄청난 마법 앞에서도 당당하게 대화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그녀를 향해 서슴없이 “할머니!(おばあさん)”라고 부릅니다. 

이에 유바바는 황당해하며 “누가 네 할머니냐!”라고 격분하는데, 치히로가 이 호칭을 선택한 데에는 매우 깊은 텍스트적 해석이 존재합니다.

외형적 공포를 지우는 순수한 본질의 호칭

치히로에게 유바바는 ‘부하를 착취하는 무서운 마녀’ 혹은 ‘온천장의 절대 권력자’라는 사회적 지위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편견과 계산에 물들지 않은 치히로의 눈에 유바바는 그저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할머니)’일 뿐이었습니다. 

치히로는 상대가 가진 겉모습의 공포나 마법의 힘에 위축되지 않고, 자신이 현실 세계에서 배워온 대로 어른에 대한 친근함과 예의를 담아 본질적인 호칭을 건넨 것입니다. 

이 순수한 태도는 유바바가 정교하게 쌓아 올린 공포의 기선제압을 한순간에 무력화시킵니다.

괴물성을 해체하고 인간 대 인간의 협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작품 속에서 ‘이름’과 ‘호칭’을 세계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장치로 사용합니다. 

치히로가 유바바를 괴물이나 마녀가 아닌 ‘할머니’라는 가족적이고 평범한 호칭으로 부르는 순간, 유바바가 가진 절대적인 초자연적 공포감의 외피가 벗겨집니다. 

호칭을 통해 구도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아닌, ‘말이 통하는 나이 든 어른과 아이’의 사적인 관계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이는 치히로가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발휘한 소통의 기술이자, 괴물 같은 존재를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강력한 언어적 장치입니다.

쌍둥이 언니 ‘제니바’와의 대조적 복선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 치히로는 유바바와 외모가 똑같이 생긴 쌍둥이 언니 ‘제니바’를 찾아가게 됩니다. 

제니바의 처소에서 치히로는 진짜 따뜻한 ‘할머니의 정’을 느끼며 위로를 받습니다. 

초반에 유바바를 향해 ‘할머니’라고 불렀던 치히로의 호칭은, 후반부에 등장할 제니바와의 진정한 유대 관계를 암시하는 거대한 복선입니다. 

외모는 동일하지만 탐욕에 눈이 먼 유바바와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제니바를 대조시킴으로써, 치히로가 부르는 ‘할머니’라는 호칭의 진정한 가치가 완성되는 서사적 구조를 갖추게 됩니다.

마무리

결론적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유바바는 평면적인 악당이 아닙니다. 

유바바 역시 어릴 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는 주인공을 괴롭히는 무시무시한 마녀에 불과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성인의 시선으로 다시 보면 지극히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인간 군상의 모습을 띠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이 책임져야 할 온천장 ‘아부라야’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자식을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빼줄 듯 헌신하며, 자신이 맺은 계약 관계와 법은 철저하게 고수하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욕망의 집합체입니다. 

우리 현실 사회의 수많은 어른, 혹은 경영자들의 초상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인물인 셈입니다.

치히로가 편견 없는 마음으로 유바바를 ‘할머니’라 부르며 다가갔기에, 무자비한 계약의 세계 속에서도 센은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고 부모를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다시 볼 때마다 새로운 사회학적, 심리학적 해석의 재미를 주는 캐릭터 유바바. 그녀의 입체적인 면모를 되짚어보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흥미로운 거울이 되어 줍니다.